성분

레티놀, 왜 12주는 지나야 보일까요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사람이 둥근 거울 앞에서 양손으로 얼굴에 크림을 펴 바르고 있어요.
사진 Katrin Bolovtsova / Pexels

레티놀을 바르기 시작하고 2주 만에 그만둔 적 있나요? 얼굴은 자꾸 벗겨지는데 거울 앞에서 좋아진 구석은 하나도 안 보이니까요. 원래 그런 성분이에요. 레티놀은 피부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도 몇 단계를 더 거쳐야 비로소 일을 시작하는데 이 단계 하나만 잡으면 왜 느린지도 왜 벗겨지는지도 전부 같이 풀려요.

피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레티놀은 병에서 나온 상태로는 아무 일도 못 해요. 피부 세포 안으로 들어가서 레티날로 한 번 바뀌고 그 레티날이 또 한 번 바뀌어야 레티노산✱이 되는 구조예요. 세포에 신호를 보내서 실제로 일을 시키는 형태는 계단 맨 끝의 레티노산 하나뿐이에요.

레티노산이 하는 일 자체는 단순해요. 피부 맨 바깥층에서 각질 세포가 새로 만들어지고 위로 밀려 올라가는 속도를 올리는 게 전부예요. 결이 정돈되고 색이 고르게 보이는 변화까지 전부 이 속도 하나에서 파생돼 나와요.

✱레티노산: 비타민A가 피부 안에서 마지막으로 바뀐 형태예요. 세포에 신호를 보내는 건 이 형태뿐이에요.

왜 이렇게 느릴까요

단계를 거쳐 바뀐다는 사실 하나가 이 성분의 성격과 사용법을 거의 다 설명해요. 얼굴에 올린 양이 전부 레티노산까지 도달하지는 않고 중간 단계에서 멈추는 몫이 훨씬 많거든요. 같은 양을 발라도 마지막 형태까지 가서 세포에 신호를 보내는 몫은 생각보다 적어요.

보이는 변화는 느린데 자극은 반대로 빨리 와요. 각질이 밀려 올라가는 속도에 갑자기 가속이 붙으면 피부 맨 바깥층이 한동안 얇고 성글어지기 때문이에요. 처음 몇 주에 나타나는 벗겨짐과 각질 들뜸이 정확히 여기서 나오는 신호예요.

레티놀과 레티노이드는 뭐가 다를까요

레티노이드는 비타민A 계열 전체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에요. 계열 안에서 성분을 가르는 기준은 하나뿐인데 레티노산까지 계단이 몇 개 남았느냐예요.

레티노산은 남은 계단이 없어요. 이미 마지막 형태라 그만큼 세고 한국에서는 의사 처방으로만 쓰는 영역이에요. 레티날은 계단이 하나 남아서 레티놀보다 빨리 움직이는 대신 따끔한 것도 그만큼 앞당겨 와요. 레티놀은 거기서 한 계단 더 뒤에 있고 레티닐팔미테이트는 계단 맨 아래라 순한 만큼 오래 걸려요.

시작하는 첫 12주는 이렇게

낮에 자외선 차단을 같이 안 할 거면 시작할 이유가 없어요. 각질이 빨리 올라오는 동안 피부는 햇빛에 평소보다 약해지거든요. 밤에만 열심히 바르고 낮을 비워 두면 애써 들인 12주가 그대로 새어 나가는 셈이에요.

첫 4주는 주 2회, 밤에만 써요. 세수하고 얼굴이 완전히 마른 다음에 올려야 피부에 닿는 속도가 급하지 않아요. 양은 완두콩 한 알이면 얼굴 전체에 충분하고 눈가와 입가는 피해서 콧방울 옆까지만 얇게 지나가세요.

따가우면 순서를 한번 바꿔 보세요. 보습제를 먼저 깔고 그 위에 레티놀을 올리는 방법이 자극을 줄이는 실제 수단이에요. 크림 한 겹이 사이에 끼면 피부에 닿는 속도가 느려져서 초반 벗겨짐이 눈에 띄게 덜해져요. 효과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도착이 늦어지는 거예요.

판단은 2주가 아니라 12주 단위로 해요. 각질이 새로 만들어지는 주기를 여러 번 돌아야 달라진 자리가 겨우 눈에 들어오거든요. 4주쯤 지나서 별 탈이 없으면 주 3회로 올리고 거기서 또 4주를 지켜보는 식으로 늘려 가세요.

벗겨지는 건 적응일까요

처음 2주에서 4주 사이에 벗겨지고 따갑고 화끈거리는 건 흔한 일이에요. 흔하다는 말이 괜찮다는 뜻은 아니에요. 얼굴이 계속 쓰라리면 횟수를 주 1회로 줄이거나 한 주를 통째로 쉬었다가 다시 들어가세요.

멈춰야 하는 선은 따로 있어요. 화끈거림이 며칠 넘게 이어지거나 진물이 나거나 얼굴이 붓는다면 적응 과정이 아니에요. 바르는 걸 멈추고 피부과 진료를 받으세요. 버틴다고 지나가는 구간이 아니에요.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면 레티노이드 계열은 피하세요. 쓰던 제품이 있어도 멈추고 의사와 먼저 상의하는 쪽이 맞아요.

같이 쓰면 걸리는 것

같은 날 밤에 각질 제거 산까지 얹지 마세요. 둘 다 각질을 건드리는 성분이라 효과가 아니라 자극만 겹쳐서 커져요. 날을 나눠 쓰거나 레티놀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산을 잠깐 빼 두는 편이 나아요.

비타민C는 아침으로 보내면 부딪힐 일이 없어요. 나이아신아마이드는 같은 밤에 써도 되는 쪽이에요. 장벽 쪽을 거드는 성분이라 레티놀 옆자리에 두는 조합이 흔해요.

성분표에서 찾기

성분표 이름영어 표기레티노산까지
레티날데하이드Retinal한 계단
레티놀Retinol두 계단
레티닐팔미테이트Retinyl Palmitate계단 맨 아래
하이드록시피나콜론레티노에이트Hydroxypinacolone Retinoate계단 셈법이 다른 쪽

한국에서 레티놀은 주름 개선 기능성으로 고시된 성분이라 쓸 수 있는 함량 구간이 정해져 있어요. 성분표에 이름이 보인다고 전부 기능성 제품인 건 아니니까 포장에 적힌 표시를 같이 확인하세요. 함량이 구간에 못 미치면 기능성 표시가 붙지 않아요.

지금 쓰는 것들 사이에 레티놀을 어디에 끼울지 애매하면 성분표부터 펴 놓으세요. 쓰고 있는 제품 목록을 그대로 들고 와서 물어보면 무엇부터 빼야 할지 같이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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